살림·정리수납·맞춤법 같은 생활 노하우부터 여행지·여행코스·맛집·등산·캠핑 등 여행·레저, 그리고 계절의 순간을 담은 일상 에세이까지. 일상을 더 편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생활·문화·여행 이야기를 폭넓게 담습니다.
전시장 입구에서 팸플릿을 받아 든 순간부터,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첫 번째 작품 앞에 3초, 두 번째 앞에 2초. 벽에 붙은 설명은 "탈근대적 재현의 해체"라고 적혀 있었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40분 만에 출구를 나오면서 든 생각은 하나였다. 나는 왜 이걸 재미없어할까. 그날 이후로 몇 번을 더 갔다. 그리고 알게 됐다. 전시가 지루했던 ...

장바구니에 몇 주를 담아뒀다가 큰맘 먹고 산 니트가 있었습니다. 딱 한 번 입고 세탁기에 넣었는데, 꺼내 보니 소매가 팔꿈치까지 올라오고 몸통은 조카 옷이 되어 있었습니다. 라벨을 그제야 뒤집어 봤더니 대야 모양 위에 커다란 X가 그어져 있더군요. 물세탁 금지. 3초면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였습니다. 옷 안쪽에 달린 그 작은 천 조각을 우리는 대개 목 뒤가...

받는 사람 이름까지 다 적어놓고, 마지막 문장 하나에서 손이 멈춘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였나 "됄까요"였나. 결국 문장을 통째로 지우고 "확인 부탁드립니다"로 바꿔 보낸다. 짧은 메시지 하나 보내는 데 3분이 걸린 셈이다. 맞춤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대부분은 ==학교에서 배웠지만 확인할 방법을 잊은 것==에 가깝다. 다행히 자주 틀리는 말들은 몇 개 안...

금요일 저녁, 스마트폰으로 항공권과 숙소를 뒤적이다 결국 창을 닫아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마음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휴가는 아직 멀었고 긴 여행을 준비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주말이 소파 위에서 흘러간다. 그런데 여행이 꼭 멀리, 오래 가야만 여행일까. 차로 한두 시간 거리, 하루면 다녀오는 근교 나들이도 계획하기에 따라 훌륭한...

올여름, 야외 결혼식에 다녀온 지인이 코끝만 빨갛게 익어 돌아왔다. 아침에 분명 선크림을 발랐다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바르지 않은 게 아니라, 바르는 법과 고르는 법을 몰랐다는 데 있었다. 화장대 위 선크림 하나에도 SPF, PA, 자외선A, 자외선B 같은 낯선 표시가 빼곡하다. 오늘은 그 작은 글씨들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내 피부와 생활에 맞는 제품...

장을 봐 온 봉지를 냉장고에 그대로 밀어 넣은 지 나흘째. 문을 열자 안쪽 어딘가에서 물러버린 애호박이 굴러 나오고, 채소칸 바닥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기가 고여 있다. 분명 아껴 쓴다고 넣어둔 것인데, 결국 반은 쓰레기통으로 간다. 냉장고는 음식을 '오래' 보관하는 기계가 아니라, 넣는 방법에 따라 수명이 크게 갈리는 공간이다. 오늘은 버리는 음식과 ...

점심을 먹고 카페 문을 열었을 때, 누구나 한 번쯤 메뉴판 앞에서 멈칫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메리카노는 익숙한데 그 옆에 줄지어 선 카페라떼, 카푸치노, 플랫화이트, 마키아토는 이름만 다를 뿐 다 비슷해 보인다. 결국 "그냥 아메리카노요"라고 말하고 돌아서면서도, 저 이름들이 대체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메뉴들은 대부분 ==...

카드 명세서를 열어 보고 "이걸 내가 언제 샀지?" 싶은 항목이 서너 개쯤 눈에 밟힌 적, 누구나 있을 것이다. 딱히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닌데 통장은 늘 월말이면 홀쭉하다. 문제는 큰 지출이 아니라, 별생각 없이 '툭' 하고 결제 버튼을 누른 작은 소비들이 모여 만든 결과다. 오늘은 의지력으로 참는 이야기가 아니라, 참지 않아도 충동구매가 줄어드는 작은 규...

버스를 기다리며 사진첩을 열었다가,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아 그냥 앱을 닫아버린 적이 있으신가요. 비슷한 각도로 세 번 찍은 음식 사진, 언제 저장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스크린샷, 흔들려서 못 쓸 사진들. 지우자니 하나하나 확인해야 할 것 같아 엄두가 안 나고, 그냥 두자니 "저장공간이 부족합니다" 알림이 자꾸 뜹니다. 물건을 버리면 집이 ...

금요일 저녁, 퇴근 준비를 하던 지수 씨에게 옆자리 동료가 다가옵니다. "주말에 잠깐만 이 자료 좀 봐줄 수 있어요?" 이미 이번 주에만 세 번째 부탁입니다. 마음속에서는 '이번엔 좀 곤란한데'라는 소리가 분명히 들리는데,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언제나처럼 "아, 네… 볼게요"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수 씨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왜 매번 거절...
